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 아내에 대해 조금 소개해야겠습니다.
제 아내는 미니멀 라이프의 열성 추종자입니다.
결혼 초에는 이런 면이 전혀 없었는데,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 한 권을 읽더니
마침내 자신은 미니멀 라이프로 살겠다며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것이 제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전의 나, 월급을 다 쓰던 남자
저는 결혼 전에는 소비를 꽤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다 썼어요.
저축할 돈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젊기도 했고, 첫 사회생활이라는 핑계로
즐기고 배우고 먹는 데 모두 썼어요.
그때는 아직 젊으니까 자신을 위한 투자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신 무장을 했습니다.
결혼 직후에는 버는 돈이 적어서 애초에 소비를 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내가 커밍아웃을 한 이후,
제 소비 생활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재정부 장관, 아내
우리 가정의 돈 관리는 아내가 전부 담당합니다.
가계부도 아내가 쓰고, 모든 통장과 신용카드도 아내가 관리해요.
제 소비 내역은 제가 직접 기록하라고 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저는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월급이 통장에 찍혀도 저는 별 감흥이 없어요.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아내도 필요한 게 있으면 제게 동의를 구하는데,
저는 아내가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입도 뻥긋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말을 꺼내면 대부분 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아내의 태도는 정반대입니다.
관문 1단계부터 보스전까지
제가 필요한 물건이 생겨서 아내에게 말을 꺼내면,
일단 이유를 묻습니다.
이유를 설명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대체 가능한 게 없냐고 묻고,
그것도 통과하면 꼭 필요한지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더 저렴한 제품은 없냐고도 물어봐요.
그러면 저는 또 열심히 검색을 해야 합니다.
저렴한 제품을 찾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에요.
품질과 가성비까지 설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끝나는 날은 아내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에요.
대부분의 경우, 그날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자기가 생각해봤는데, 안 사도 될 것 같아.”
지금까지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갑니다.
한두 달 후 저는 또 말을 꺼냅니다.
돌아오는 답은 똑같습니다.
이렇게 1년을 버티면 아내도 마침내 인정합니다.
“진짜 필요한 거구나.”
그리고 드디어 그 물건을 손에 넣게 됩니다.
아니면 제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거나,
그 물건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거나요.
보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물건의 결말
아내라는 보스를 어렵게 무너뜨리고,
드디어 원하던 물건을 삽니다.
여기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손에 넣은 물건도
일주일이 지나면 어딘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서서히 서랍 깊숙이 들어가거나
어딘가에 방치되기 시작해요.
그러면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그럴 줄 알았다며, 다시는 안 사준다고 합니다.
심지어 물건에게 사과하라고까지 해요.
정중히 사과를 마치고, 중고 거래 앱을 열어
이별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것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마음속으로 수십 번 곱씹습니다.
시간을 두고 또 생각해봐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 물건을 하루에 몇 번이나 쓸까?
아니, 1년에 몇 번이나 쓸까?”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연스럽게 답이 나옵니다.
아내의 미니멀 라이프가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충동구매를 막아주는 최고의 시스템이 제 곁에 있었던 거니까요.
단, 미니멀 라이프가 맞지 않는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희 집에서도 5,000원 이하로 살 수 있는 물건은
관문이 반쯤 열려 있는 편입니다.
다이소나 중고 가게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쓰다가 아니면 그냥 버리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되거든요.
어쩌면 진짜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물건이 아니라 욕구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 덕분에 그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