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자어의 뜻도 모르고 쓰고 있다 — 알맹이 없는 언어 생활의 불편한 진실

천자문을 외우던 중학교 시절

중학교 때 한자 수업이 있었습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으로 시작하는
천자문을 외우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해요.

수업에서는 기초 한자를 배웠고
덕분에 물 수(水), 땅 지(土) 같은 간단한 한자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한자 수업이 없었지만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기 때문에
한자를 놓지 못했어요.
그마저도 시험이 끝나면 싹 잊어버렸고
한자는 제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이 달라졌어요.
한자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고요.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한자를 한글과 섞어서 사용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단어의 60~70%는 한자어입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먼저 말씀드릴게요.
한글을 멀리하고 한자를 높이 평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도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문자예요.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달합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라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고 있을까요?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이라면 상관없어요.
뜻을 통째로 외우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한자어는 다릅니다.
한자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 있어서
글자의 조합만으로 의미를 추측할 수 있는 구조예요.

학교와 생물, 한자를 알면 뜻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학교(學校)’는 배울 학(學)과 가르칠 교(校)의 조합이에요.
정확한 뜻을 몰라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생물(生物)’은 날 생(生)과 물건 물(物)의 조합이에요.
살아있는 것, 즉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한자어의 진짜 강점은 여기에 있어요.
처음 듣는 단어라도 한자 뜻을 알면
대략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체계인가요.

우리는 지금 이 장점을 완전히 버려두고
한자어를 그냥 한글처럼, 통째로 외워서 쓰고 있어요.
알맹이를 빼고 껍데기만 취하는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깝습니다.

한자를 알면 일본어와 중국어도 쉬워집니다

한자를 익히면 또 하나의 큰 이점이 생겨요.
일본어와 중국어 습득이 훨씬 빨라집니다.

중국, 일본,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도 비슷하며 음식도 입에 잘 맞는 편이에요.
한자가 중국에서 유래했으니 세 나라 모두
한자를 공유하는 문화권에 속해 있습니다.

일본어를 예로 들면,
약속은 일본어로 ‘야쿠소쿠(やくそく)’,
시간은 ‘지칸(じかん)’,
계약은 ‘케이야쿠(けいやく)’입니다.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한자어 발음이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놀랍도록 비슷해요.
한자 각 글자의 일본어 발음을 알면
한국에서 쓰는 한자어를 그냥 일본어로 발음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社會)’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모른다고 해도
‘사(社)’와 ‘회(會)’의 일본어 발음을 알고 있다면
그냥 이어서 발음하면 돼요.
실제로 일본어로는 ‘샤카이(しゃかい)’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몇 년을 살며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해왔는데
일본어는 마치 단어만 조금 다른 한국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문법 구조도 거의 같고 한자어 발음도 비슷해서
영어보다 훨씬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이제라도 한자의 중요성을 다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한자를 거의 배우지 않아요.
일상에서 한자를 볼 기회도 없으니 필요성을 느끼기도 어렵겠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이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사회와 교육이 한자어의 중요성을 외면해온 결과예요.

우리가 한자어를 계속해서 쓴다는 전제 아래
교과서와 생활 환경에서 한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은 졸업 후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아요.
하지만 언어는 평생 씁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한자어의 뜻도 모른 채 쓰는 것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붙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한자의 가치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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