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시스템 탓이다 — 항공사 수화물 분실에서 자본주의까지, 핑계의 철학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면 저는 습관처럼 시스템 탓을 합니다.
제 잘못에도, 남의 잘못에도 어김없이 시스템이라는 핑계를 가져다 붙여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사고방식에는 나름의 효용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직접 탓하는 일이 줄어들거든요.
남 탓도, 자기 탓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개인이 아닌 구조에 닿게 되기 때문이에요.

미국 총기 사고의 범인은 누구인가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보겠습니다.
범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총을 쏜 그 사람을 지목하겠죠.

하지만 한 단계 위로 올라가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왜 총을 쏘았을까요?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정신질환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학교에서의 따돌림, 불안정한 가정환경, 부모의 이혼 같은 이유가 있었을 수 있어요.

그럼 부모는 왜 갈라섰을까요?
경제적 갈등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제적 어려움은 왜 생겼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 탓일까요? 아니면 개인의 노력 부족일까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잘못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원인은 항상 그 이전의 원인을 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잘못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물어야 한다고요.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조가 떠오릅니다.
콜센터의 응대 매뉴얼처럼, 효율을 위해 설계된 도구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시스템이 모든 사람에게 이롭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예로 들어볼게요.
자본을 가진 사람은 투자를 통해 부를 불리지만
자본이 없는 사람은 그 성장을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은 처음 설계될 때부터 경계를 가집니다.
그 경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유리하고
경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저항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어요.
완벽한 시스템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저의 답은 하나입니다.
시스템을 원망하지 말고,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사회, 기업, 조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안의 허점을 찾아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시스템과 공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실제 경험을 하나 나눠볼게요.

항공사 직원이 말하지 않은 1,000달러 보상

얼마 전 해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컨베이어 벨트를 한참 기다렸지만
제 캐리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어요.

수화물에 미리 에어태그를 넣어둔 덕분에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제 짐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 가 있었습니다.

항공사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2~3일 후 호텔로 배송해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보상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갔지만
짐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갈아입을 옷도, 세면도구도 없는 채로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 어떤 보상 제도가 있는지 직접 검색해봤습니다.
알고 보니 항공사 측에서는 수화물 분실 시
최대 1,000달러 이내의 필수 지출을 보상해주는 규정이 있었어요.
직원이 먼저 알려주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필요한 생활용품과 의류를 구입했고
영수증을 모두 보관해뒀다가 귀국 후 보상을 신청했어요.
결과는 전액 계좌이체로 환급받았습니다.

항공사 직원의 말만 믿었다면 한 푼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시스템 안에 이미 마련된 규정을 스스로 찾아 활용한 것뿐이었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핑계와 활용, 그 경계 어딘가에서

시스템을 탓하는 것이 무책임한 핑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나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영리한 생존 방식이에요.

세상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 시각,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구조를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
이 두 가지가 제가 ‘시스템 탓’이라는 버릇에서 배운 것입니다.

불평보다 활용이 낫습니다.
시스템은 어차피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